[나는 청년 농부다] 딸기 향 따라 피어난 나눔의 꿈, 세계로 향하다
'나눌 수 있는 직업' 농업 매료 꿈 결정농사짓고 싶어 강원대 농과대학 진학군복무 마치고 2016년 농부의 길로식용달팽이 재배 실패 후 현장 공부2023년 춘천 딸기 농장 알로록 운영수확·딸기 케이크 만들기 체험 인기지역 농산물 활용 빙수가게 이달 오픈"아프리카 농업 기술전수 봉사 꿈꿔"8. 조효명 농장 알로록 대표어릴 때부터 농사가 짓고 싶었다. 집에서 농사를 짓는 것도, 땅이 있는 것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농사를 지으면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강조한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사를 짓고 싶어서" 강원대 농과대학에 진학, 졸업 후 8년만에 농장 알로록을 열었고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다. 10년 안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싶다. 조효명(36) 춘천 농장 알로록 대표의 이야기다.▲ 딸기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장 알로록.■말하는 대로 이뤄진다조효명 대표의 진로는 분명했다. 다름아닌 농업. 학창시절부터 나중에 커서 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했다. 여러가지 진로 중 농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지금도, 그때도 드물다. 조 대표는 '나눌 수 있는 직업'이어서 농업에 매료됐다고 했다.그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줄곧 그에게 '세계'와 '나눔'을 강조했다.조효명 대표는 "어머니가 방 한 쪽에 세계지도를 붙여주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태권도를 배울 때도 '세계적으로 태권도가 인기가 있으니 태권도를 매개로 다른 나라에서도 활동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왔으면 한다'고 하셨을 정도"라고 했다.어머니의 이 같은 바람은 꿈의 씨앗이 됐다. 어렸을 때는 치과의사가 돼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커 가면서 기술을 전수해주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그는 "아프리카는 물질과 식량이 부족한데 의료봉사보다는 농업 기술이 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며 "우장춘 박사처럼 제가 농업으로 그 곳에서 쓰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그렇게 농업은 그의 꿈이 됐다.농사를 짓고 싶어 간 강원대 농과대학(농업생명과학대학)이니 대학생활도 남달랐다. 농과대학이 강원대학의 모태라는 점, 전국적으로도 강원대 농과대학이 유명하다는 점은 그에게는 큰 자부심이었다. 대학이 너무 좋아서 단과대학 학생회장도 맡았다.농과대학에 가더라도 공부를 더 하거나 농업관련 회사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졸업 후 계획을 물을 때마다 "농사짓겠다"는 그는 단과대학 내에서도 '독특한 부류'로 통했다.알면 알수록 겸손해진다고 했던가. 공부를 할수록 농업은 어려웠다. 자금이나 부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를 맨 땅에 헤딩하듯 준비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진입장벽은 너무 높았다.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농사가 짓고 싶어 선택한 대학이다. 현실과 타협한다면 스스로에게 고개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끄럽더라도, 먼 미래의 일이더라도 '일단 입 밖으로 뱉고 보는' 조효명식 삶의 태도는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조효명 대표는 "하고싶은 게 있으면 일단 말로 뱉는 편"이라며 "말을 해놔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일은 지키게 되고, 이루게 된다"고 했다.ROTC 출신인 그는 2014년 졸업 후 2016년 군복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농장알로록 조효명 대표■좌절의 연속처음 도전한 작목은 식용달팽이였다. 초기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 작목이라 막 농사를 시작하는 그에게 적합해보였다. 차도 없던 시절 KTX를 타고 전국의 농장들을 다녔다. 농업관련 기관에서 자문도 받고 조언도 구했다. 진짜 농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시 식용달팽이는 우리나라에서 농·축산물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식용달팽이를 재배한다고 해도 농업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각종 정책 자금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눈 앞이 캄캄했다. 화도 났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자신에게, 잘못된 정보를 준 기관에게.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당장 농사를 짓지는 못하지만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 친환경 농자재 회사에 취업해 농업 현장에 대해 공부했다. 이후 식품가공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식품 가공, 6차산업 구조에 대해서도 익혔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교육생으로 뽑혀 20개월 장기교육과정도 밟았다. 노지에서 옥수수와 토마토도 재배해봤다. 초보 농부의 고군분투가 이어지던 시절이었다.▲농장 알로록 전경. 딸기 따기 체험과 카페 공간이 마련돼 가족 단위의 체험객들이 많다좌충우돌 시기를 보내던 2023년 지자체 지원을 받아 춘천시 사북면에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에 농장 알로록을 만들었다. 농장 이름은 '여러가지 밝은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조금 성기고 고르지 아니하게 무늬를 이룬 모양'이라는 뜻의 알로록 달로록에서 따왔다. 농업을 통해 다양한 즐거움과 농업 본연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도 담았다.그가 선택한 작목은 딸기다. 농업으로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을 만한 작목으로 딸기만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호불호가 적고 체험이나 가공까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농장 알로록에서는 딸기를 수확해볼 수 있고 수확한 딸기로 미니케이크나 철판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이제 2년차인 농장 알로록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올해들어 4개월 간 5000여 명이 찾았다. 화천산천어축제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터라 연초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렸고 주말에는 가족단위 체험객들이 많다.딸기를 따면서 즐거워하고 같이 음식을 만들며 추억을 쌓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효명 대표는 '농사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조 대표는 "오랫동안 꿈꾸던 모습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니 뿌듯하고 감사하다"며 "더 큰 만족을 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한다"고 했다.힘들 때마다 고민을 나누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했던 4-H모임도 그에겐 큰 힘이 됐다. 그는 "같은 입장에 놓인 청년 농부들과의 만남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됐다"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조효명 대표는 "세계를 품고 이웃과 나눠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대로 농장 알로록에 세계지도를 새겼다.■멈추지 않는 꿈넘어질 때도 있고 삐뚤빼뚤 걷던 때도 있었지만 목적지는 분명했던 지난 시간이었다. 조 대표는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춘천 번개시장의 상가를 임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빙수가게를 이달 오픈한다.'한계가 없는' 농업을 닮아 그의 꿈과 계획도 성장 중이다. 조효명 대표는 "직장에 다닐 때에는 목표나 한계를 조직에서 설정하다보니 동기부여가 잘 안됐다"며 "농업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확장하는 게 가능한 만큼 농업의 범위를 정말 한계 없이 확장해보고 싶다"고 했다.어린시절 꿈꿔왔던 아프리카행도 조금씩 준비 중이다. 농장 알로록 한가운데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10년 후인 40대 중·후반에는 아프리카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그는 "당장 가고는 싶은데 그렇게 되면 여행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원하는 모습의 그런 사람이 돼서 가려면 더 공부해 지식과 기술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농사를 짓겠다'고 얘기하던 학생이 진짜 농부가 됐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도 '말하던 대로' 농부가 돼 다행스럽기도 하다.조효명 대표는 "이제는 농부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은 보여주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농업으로 많은 이들과 나누고 살고 싶다"고 했다. 오세현 기자 tpgus@kado.net강원도민일보https://n.news.naver.com/article/654/0000116579?type=main
2025-04-18